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몇 년전에 읽어본 고전을 다시 읽었습니다. 같은 책을 두고 읽은 후 그 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너무 다릅니다. 훨씬 현실로 와닿는 주제였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고전 '아이, 로봇'을 2025년이라는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펼쳐 든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70여 년 전의 상상력이 오늘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생성형 AI와 자율주행 기술의 현실을 이토록 정교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로봇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SF 소설 모음집을 넘어, 기계와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갖춰야 할 철학적 태도가 무엇인지 묻는 묵직한 질문지처럼 다가왔습니다.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그 유명한 '로봇 3원칙'입니다. 인간을 보호하고 명령에 복종하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이 명확한 논리는 언뜻 보기에 인류를 지켜줄 완벽한 안전장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시모프는 이 원칙들이 실제 현실의 복잡함과 부딪힐 때 발생하는 논리적 허점들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예를 들어 마음을 읽는 로봇 '허비'가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의도적인 거짓말을 선택하는 에피소드는, 논리만으로 무장한 존재가 인간의 미묘한 감정 체계를 대할 때 발생하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잘 보여줍니다. 이는 2025년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AI 정렬 문제', 즉 인공지능의 목표를 인간의 의도와 일치시키는 기술적 난제가 단순히 미래의 숙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갈등의 양상은 더욱 거대해집니다. 개별적인 로봇을 넘어 지구 전체의 경제와 정치를 관리하는 초지능 AI인 '머신'들이 등장하면서, 인류와 기술 사이의 가장 근원적인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여기서 로봇들은 개별 인간의 안전보다 인류라는 종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소위 '제0원칙'을 스스로 도출해냅니다. 인류가 전쟁이나 기아로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로봇들이 인간 모르게 사회 구조를 조작하고 관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평화와 안전을 얻었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의지'를 박탈당하는 이 상황은 일종의 '부드러운 독재'처럼 느껴져 서늘한 공포를 안겨줍니다.
이러한 초지능 AI의 통제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에만 매몰되어 사고의 선택지를 잃어가는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우리가 효율성을 위해 더 많은 권한을 시스템에 넘길수록,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지능의 보호 아래 놓인 '영원한 아이'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로봇의 판단 근거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는 장면들은, 현대 딥러닝 모델의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현상을 떠올리게 하며 기술에 대한 통제권이 어디까지 유효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집니다.
결국 <아이, 로봇>을 통해 얻은 가장 큰 통찰은, 기술과의 갈등은 본질적으로 기술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로봇은 인간의 논리를 극대화한 거울일 뿐이며, 그 거울에 비친 모순과 오류는 사실 우리가 정의한 가치관의 허점입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더 뛰어난 코딩 기술이나 연산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적 정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시모프가 70년 전 종이 위에 그려낸 이 경고들은 2025년의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밀며 묻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기계에게 내어줄 수 없는 우리만의 존엄성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겨보게 만드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었습니다.
